교회 안팎으로 주의해야 할 것들

그릇된 마리아 신심|2018. 12. 27. 14:02

신학적 제언 및 교회 안팎으로 주의해야 할 것들

 

 

그릇된 성모신심에 대한 신학적 제언

 



교도권에 대한 순명


  베이사이드나 상주, 나주의 경우에, 거기서 제시하는 그릇된 사적 계시들의 바탕에는 그릇된 성모 신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성모님의 위치(혹은 위상, 권위)에 대한 이해이다. 성모신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유익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를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우신 공동체로 이해하고, 또 교도권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직분으로 이해한다. 이를 종합하면 성모님의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세워진 교회 교도권에 반대되거나 그 역할을 대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식별하는 중요한 기준인 교도권에 대한 순명은 주교나 사제 이외에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선민의식 혹은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는 것처럼, 주교와 그 협력자인 사제는 하느님 백성의 교육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직무로 교회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뽑힌 이들이다. 이들의 권위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처럼 인간들 사이의 단순한 역할 분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위임에서 부여받은 해석의 권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도권의 판단에 순명하는 것은 이러한 성모신심들을 판별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복음의 기쁨 선포하는 교도권

 

  사제나 신학생들 중에 흠숭과 상경, 공경의 차이점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자들이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라는 문구에서 전구의 원리를 깨닫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는 문구에서 그리스도론적 지향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릇된 성모신심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신학적 명제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리아론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신학적인 명제들을 이용해서 무엇이 옳은 신심인지 판별하기 위한 잣대로 쓰기 위함이 아니다. 구원 역사의 정점인 육화 사건에서 마리아가 하느님께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신학적 명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기쁜 소식의 일부이다. 마리아론은 그러한 역할을 하신 성모님에게서 우리가 어떤 희망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그릇된 성모 신심에 대해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오류만 가르치는 데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위의 사례들을 접하고 나서 무언가 잘못된 점을 느끼고 찾아올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위의 사례들에서 성모님의 은총을 느꼈다고 생각하면서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것들은 신학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이니 거기 가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직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직무는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온 교회에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각 주장들에서 발견되는 오류와 문제점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모님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그 올바른 성모 신심이 교회에 전해 주는 기쁨과 희망이다. 그릇된 성모신심의 오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모신심을 이단 잡아내는 이성적인 잣대로만 이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제 우리는 둘째 하와(구원론)이자 그리스도인의 모범(신학적 인간학)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은 성인(은총론)이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가르침과 동시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크나큰 희망과 위로를 함께 가르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성모님은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구원을 직접 하사하시는 전능하신 성모님은 아니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그보다 더 깊은 복음의 기쁨을 보여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성모신심의 발생과 확산에 대한 고찰 성모신심이 주는 기쁨의 중요성

 

  신자들이 이러한 내용에 현혹되는 것을 딱 한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 다양한 원인들을 여기서 모두 세세하게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그릇된 성모신심들이 가지는 여러 특징 중에 그 진술의 구체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베이사이드, 상주, 나주 같이 그릇된 성모신심들이 주장하는 사적 계시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사항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산당, 러시아, 3차 세계대전, 2차 대공황 등 당시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거나 두려워하던 내용들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인 진술이 담겨 있다. 또 나주의 경우에는 성모님의 은총으로 암, 치질, 무좀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병들이 모두 낫는 기적수가 내려졌다고도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겪는 불안이나 고통을 명쾌하게 해설하거나 없애줄 수 있다고 단언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점이, 이러한 그릇된 성모신심이 확산되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교회가 신자들에게 영혼의 구원과 복음의 기쁨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교회가 이러한 사이비 집단에서 주는 광적인 열광 혹은 절대적인 위안을 대체할 수 있는 내적인 확신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모신심은 예수님을 향한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이 그 존재 의의이다. 신자들이 성모신심 활동을 통해 성당에서 하느님을 믿는 기쁨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면 나주나 베이사이드를 찾는 발걸음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한 성모신심 활동이 교회 안에 활성화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우선 성모신심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주변에 전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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