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황 데레사

그릇된 마리아 신심|2018. 12. 27. 20:20

상주의 황 데레사

상주의 황 데레사와 신비체험

 

  황 데레사는 1926년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이 결혼 3년 만에 첩을 얻어 다른 살림을 차리면서 본가를 전혀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친은 극심한 가난 중에 3남매를 키웠다. 황 데레사는 이를 피해 18살에 11살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남편은 빈털터리에 술주정뱅이로 그녀에게 엄청난 폭력을 휘두른다. 이처럼 황데레사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으로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고통을 일종의 순교자적인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19469월 상주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세례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탈혼 중에 천주성삼과 성모님, 천당·연옥·지옥 등의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194811월에는 성모님으로부터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 간주경을 받았다고 하며, 19492월에는 묵주 간주경을 받는다. 또한 황 데레사는 1949년 방인 수도회 설립에 대한 성모님의 뜻을 본당 신부인 정행만 신부에게 전한다. 이처럼 황 데레사는 세례를 받은 후부터 1987년에 이르기까지 천주성삼과 성모님, 성경의 인물들과 한국 순교자들에 관한 많은 환시를 보았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성모님에 대한 환시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환시와 함께 황 데레사는 보속 고통을 겪었는데, 이는 194811월 십자가길 14처 고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1처마다 3시간씩 3일 동안 탈혼 상태에서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고 예수가 당하신 고통을 그대로 대신 받았다고 하며, 이후 그녀는 지속적으로 십자가 고통을 받게 된다. 또한 황 데레사는 예수와 성모의 고통을 동시에 경험하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결합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고통에 대하여 그녀는 무의미한 고통은 없으며,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인류, 한민족, 한국 천주교회, 사제 집단 등의 구원을 위한 희생 혹은 대속으로 이해하였다.

 

정행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1948년 상주본당 부임 후, 정행만 신부


  정행만 신부와 황 데레사와의 첫 만남은 1948년 상주본당에 부임하면서 이루어졌다. 황 데레사는 성모 신심을 통하여 천주 성삼의 특은을 받고 있다며 정 신부에게 지도를 청하였다. 처음에 정 신부는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며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에 황 데레사는 정행만 신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제서품 때에 마음먹은 것을 알아 맞췄는데, 그 이후로 정 신부는 황 데레사의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행만 신부는 황 데레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듣고, 이를 성모님의 말씀이라 생각하였으며, 방인 수도회를 창설하라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당시 대구교구장인 최덕홍 주교에게 허락을 구하기도 한다.

 

황 데레사사건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

 

1) 황 데레사 사건에 관한 대구교구장 교령, 서정길 주교, 1957


  최덕홍 주교가 황 데레사 사건에 대하여 다소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 반면, 후임 교구장인 서정길 주교는 그녀의 환시를 성삼은혜라고 하며 따르는 이들이 생겨나는 현상과 상황을 파악하여 19571월 이를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필요한 모든 사항에 관하여 조사하였다. 서정길 주교는 조사 결과, 그녀가 경험했다는 묵시, 발현, 계시, 예언 등의 모든 사건들과 현상들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는 교령을 이를 195722일에 반포하였다. 서정길 주교는 이 교령을 통해 황 데레사와 관련된 모든 것, 곧 계시, 경문, 그림, 예언, 전파, 집회, 토론, 영성지도를 금지시켰다. 이 금령에는 황 데레사와의 상호 연락, 방문, 서신 등에 대한 금지도 포함되었다.

 

2)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1997


  1997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발표한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흥종교시한부 종말론 등을 언급하며 4항에서 사적 계시를 다루었다. 이 문헌은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밝히고, 사적 계시의 가치를 다루었으며, 사적 계시의 3가지 식별기준을 제시한다. 이 문헌이 황 데레사 사건을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신앙교리위원회는 199719일 주교회의에 제출한 건의서에서 황 데레사의 책을 신앙과 교리를 해치는 서적으로 분류했으므로 이 문헌이 황 데레사에 대한 교도권의 입자을 밝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올바른 성모신심,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2006


  문헌은 먼저, 사적 계시라고 주장하는 황 데레사의 내용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던 지식과 상상의 결과물임을 밝힌다. 본 문헌은 황 데레사가 체험한 사적 계시에 대하여 그런 사적 계시의 내용들은 당시 그가 받은 교리 공부, 강론, 영적 상담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꾸며진 임의적인 환상과 생각이라 할 수 있다고 밝힌다. 특별히 예수님과 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이라는 책을 언급하며, “이 책은 그가 이제껏 듣고 알아 왔던 예수님과 성모님의 수난을 자신의 삶과 지식에 비추어 본 묵상이라 여겨진다.”고 밝힌다.


  다음으로 문헌은 기적적 현상들을 언급하면서 황 데레사의 사적 계시가 신앙 중심이 아니라 기적 중심이라는 짙은 인상을 준다고 밝힌다. 이는 유사 영성 운동 혹은 사이비 영성 운동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이에 대한 예시로 묵주기도 간주 경문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황 데레사 사건이 교도권에 대한 순명과 겸손을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와 함께 십자가의 요한 성인과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말을 인용하며 순명과 겸손의 중요성을 밝힌다.


교도권은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을 파악하며,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친다 


신학적 성찰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금 황 데레사의 사적계시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성찰에서 먼저 공적계시와 사적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떠한 사적계시도 공적계시를 보충하거나 대차할 수 없으며, 공적계시와 어긋나는 사적계시는 있을 수 없다. 교도권은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황 데레사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으며 1957년 서정길 주교의 교령으로 황 데레사의 계시가 참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후 1997, 2006년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문헌도 같은 입장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교도권은 무엇보다 하느님 백성의 (영적)선익을 위해 봉사하며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제시한다. 특별히 황 데레사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에 있어서는, 정행만 신부가 설립한 수도회 구성원들이 복음 정신에 따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고 돕고자 하는 교도권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와 보살핌 속에서도 교도권은 황 데레사의 사적계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서정길 주교, 황 데레사 사건에 대한 대구교구장 교령, 1957.2.22.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올바른 성모신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


황데레사, 데레사의 지난 일들, 미리내성모성심수도회, 1998

정행만, 예수님과 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1988

 

우혜란, 한국 가톨릭 여성에게 고통과 신비체험: 황데레사와 윤율리아의 자전적 기술을 중심으로, 종교와 문화(2010/19),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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